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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아시아 함대는 일본 나가사키에 집결하여 약 보름 동안 실전에 못지않은 해상 기동 훈련을 실시하었다.
마침내 주청 전권 공사 로우와 아시아 함대 사령관 로저스는 기함 콜로라도호를 포함하여 85문의 대포가 탑재된 군함 5척, 해군과 육전대원 총 1,230명을 이끌고 조선으로 출발하였다남양만에 도착한 미군은 뱃길을 탐사하면서 강화 해협 쪽으로 북상, 물류도(勿溜島)를 모함의 정박지로 정한 다음 조선에 해안을 탐측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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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튿날 포함 2척과 기정 4척으로 구성된 미군의 탐측대는 서울의 관문인 강화도 해협 수로를 측량, 정찰하기 위해 해협을 거슬러 올라갔다.
탐측대가 손돌목 포대 부근에 도달했을 때 포탄이 빗발치듯 날아왔다.
미군은 갑작스런 공격에 당황했지만 조선 측 대포의 성능이 형편없었으므로 피해가 없었다(4. 14.).
손돌목 포격 사건을 계기로 미군은 대대적인 강화도 침공 작전을 펼쳤다(4. 24.).
미군은 우세한 무력을 바탕으로 초지진에 함포 사격을 가하여 초토화시킨 후 육전대를 상륙시켰다.
다음날 초지진을 점령한 미군은
수륙 양면 작전을 전개하면서
덕진진을 점거하고 광성보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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