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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근현대사

일제의 의복 통제

by 산골지기 2015.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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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의복 통제는 백의에 대한 탄압과 색의 장려로 시작하여 국민복과 몸뻬의 장려로 이어진다.

중·일 전쟁이 일어나고 사회가 전시 체제로 재편되면서, 식민지 조선에서도 사회생활 전반을 전시 체제에 적합한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행해진다. 물자 통제가 실시되고 사치품의 제조와 판매가 금지되고, “생활의 전시 태세화”, “전시 생활의 확립이 끊임없이 주장되었다.

 

일제는 전시 체제를 이유로 식민지 인민들의 일상생활 구석구석까지 통제하고자 하였으나 그렇게 만족할 만한 효과적인 통제는 잘 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좀 더 철저한 통제를 하고자 하는 국가의 욕구와 잘 따라주지만은 않는 인민들이라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통제를 위한 국가 장치의 하나로 국민복이 등장한 것이다.

국민복은 일본에서 먼저 제안되고 식민지 조선은 그것을 따라 간 양상이었지만 일본에서 국민복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로 혼란을 겪는 사이에 조선 총독부에서는 일본보다 앞서 먼저 국민복을 제정하였다. 여러 정황을 보면 식민지 조선에서는 관리들의 제복을 만드는 과정에서 국민복이 탄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940 11 1국민복령이 공식적으로 공포되면서 국민복을 민간에게 적극적으로 권장하기 시작하였다.

 

국민복은 먼저 공무원들이 입고 다음으로는 각종 관변 단체와 기타 단체, 그리고 시민 통제의 말단 조직을 통하여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민복은 기본적으로사무복이었기 때문에 적어도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입는 옷이었다.

 

따라서 당시 식민지 조선의 상황으로 볼 때 은행원이나 회사 사무원 등 상대적으로 엘리트층이 입은 옷이 국민복이라 할 수 있다.

 

국민복은 매우 싼 값에 보급된 것으로 보이며, 그래야만 검소한 의복 생활을 위해 국민복을 권장하는 의미가 살아날 수 있었고, 또한, 가난한 하급 사무원들도 입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국민복은 적극적으로 선전되고 권유되었다.

 

 하지만 당시 기사를 보면 이 시기의 엘리트층들이 전시 체제에 잘 순응한 것만은 아닌 듯하다.

 

전시 말기임에도 사치하는 남성에 대한 불만이 기사화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일제는국민복에국민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지만

 그것은 남성의 의복이었다.

 

대신 여성에게는 몸뻬가 권장되었다.

 

식민지 조선에 몸뻬는 처음에는 주로 방공 연습용 비상복으로 들어 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몸뻬는 빠르게 보급되어 도시의 중산층은 물론이고, 농촌의 여성들도 광범위하게 입는 옷이 되었다.

 

그러면 일제는 몸뻬의 보급을 위해 어느 정도의 강제력을 행사한 것일까? 방공 연습을 할 때에는 모든 여성들에게 강제되었지만, 방공 연습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모든 여성들에게 강제적인 방법이 동원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몸뻬를 입지 않은 여성은 관공서와 집회장의 출입을 금하고, 전차와 버스도 타지 못하게 하자는 운동이 전개되는 등의 강제적인 수단이 동원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부유한 중산층 여성들이 몸뻬로 사치를 하는 등 국가가 의도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이들에게 몸뻬는 하나의 유행일 뿐이고, 국가에서 권장하니 흉내를 내는 것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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