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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군기의 폭격과 미군 야전포병의 일제사격이 집중되자 가산산성 안은 피비린내 나는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아름드리 낙엽송이 순식간에 벌거숭이가 되고 성벽 위에 웅크린 적병들이
밤송이 떨어지듯 아래로 곤두박질했다. 가장 치열한 교전을 치른 제4중대는
180명이던 병력 중 몸이 성한 자는 장교 1명과 병사 10명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감소되어 있었다.
가산산성에 침투한 북괴군 제14연대도 1950년 8월27일 전투에서 와해, 약 400여 명만이 탈출했다고 한다" 하지만 가산산성 전투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8월12일에는 미군이 제1기병사단과 공군이 입체작전을 벌여 백병전을 무릅쓰고 인민군 이천오백 명쯤을 살상하여 낙동강을 건너 대구로 진입하려는 적의 기세를 꺾었다.
8월13일에는 가산 면학산에 있는 328고지에서 전투가 전개되었고 328고지에서는 하루에도 주인이 두번씩 바뀔 정도의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다.
8월16일 오전에 일본 요꼬다와 가네다에서 출발한 B29 비행기
98대는 왜관에 있던 북한군 진지를 향해 대대적인 폭격을 가했다.
26분 동안에 퍼부은 폭탄이 무려 960톤에 이르렀다. 이 폭격으로 강을 건너기위해 있던 북한군 사만 명 중에 적어도 삼만 명이 죽었다고 한다.
병사들의 시체가 산과 들을 뒤덮었고 낙동강은 붉은 핏빛으로 물들었다.
1초에 스무명, 1분에 1150명 꼴로 폭사한 셈이다. 바로 이 폭격으로
국군과 미군이 대구를 방어할 수 있었을 뿐만이 아니라 승리할 수 있는
결정적인 전기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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