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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6월과 1920년 10월의 봉오동, 청산리 전투에서 큰 타격을 입은 일제는 독립군의 항전을 자기들의 식민통치에 대한 위협이라고 판단하고, 만주에 있는 한국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완전 소탕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일제의 보복은 1920년 10월부터 1921년 4월까지 계속되었는데, 한인 촌락에 대한 무자비한 초토화가 전개되어 한인들을 무차별하게 살해하고 가옥, 교회, 학교 등도 불태워 우리나라 독립군의 기반 자체를 완전히 파괴하고자 하였다.
1920년 10월과 11월 두 달 사이에만 약 3,600여 명이 학살당하였고, 150여 명이 검거되었다. 또한 가옥 3,500여 채, 학교 60여 개소, 교회 20여 개소 및 양곡 6만여 석이 소각되었다고 전해진다.
간도참변은 만주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경신참변 또는 경신간도학살사건이라고도 한다.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에서 독립군에게 대패한 일본군은 이도구와 삼도구 지방을 중심으로 해서 한국인 촌락을 불지르고, 한국 농민들을 무참히 죽였으며, 학교와 교회도 불태웠다.
연길현 의란구에서는 30여 호에 이르는 주민을 몰살하고, 마을 전체를 폐허로 만들기도 했다.
1920년 10월부터 그해 말까지 간도 일대에서 일본에게 학살당한 한국인의 수는 공식 통계로 3,115명이지만, 실제로는 1만명 이상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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