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인종은 성품이 어질고 효성스러우며 너그럽고 자비로웠는데요
학문을 좋아하였던 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스승과 벗에 대한 예가 밝았던 인종은 예종 10년에 태자로 책봉이 되었고요
자신의 외할아버지인 이자겸 등에 의해 15세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고려의 인종 |
성품이 어질고 효성이 강함 |
학문을 좋아하였던 왕 |
예종 10년에 태자로 책봉 |
이자겸 등에 의해 15세로 왕위에 오름 |
고려의 인종은 예종에 이어 즉위하였는 데요 즉위초에 일어난 대표적인 반란으로 외척인 이자겸이 일으킨 이자겸의 난이 있습니다.
이자겸의 난을 진압한 인종은 척준경 세력을 숙청하고 왕권을 확립하게 됩니다.
인종은 이자겸의 난을 진압한 후에 일어난 또하나의 귀족반란인 묘청의 난도 진압을 하였습니다
.묘청의 난 당시 서경파 세력들은 서경에 대화궁 건설을 착수 하였고요 금나라를 정벌하자는 금국정벌론을 펼쳤습니다. 또 연호를 사용하고 왕을 황제로 부르자는 칭제건원론도 제기를 하였습니다,
인종의 업적 |
무학재 폐지 |
서적소 설치 |
삼국사기 편찬 |
●인종의 업적
인종 시기에는 서적소가 설치되고 무학재가 폐지 되었습니다.
인종 13년에는 묘청의 난이 일어나 도읍을 서경으로 옮기자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묘청의 난이 진압된 이후 인종은 김부식으로 하여금 삼국사기를 편찬하게 하였습니다.
인종 시기에 김부식등이 편찬한 삼국사기는 지금까지 전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입니다.
●인종시기의 서경 천도 논의
인종시기에는 서경파 세력을 중심으로 하여 도읍을 서경으로 옮겨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요
이와 관련하여 동국통감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을 하였습니다.
서경에 행차하였다. 이때 묘청과 백수한이 아뢰기를,“상경(上京)의 지세(地勢)가 쇠하였기 때문에,
하늘이 재앙을 내려 궁궐이 불에 타서 없어졌으니,
모름지기 서경으로 옮기시어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모아서 무궁한 왕업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하니,
왕이 여러 일관(日官)에게 묻자,
모두 말하기를,“불가합니다.”하였다.
정지상, 김안 및 대신 등이 아뢰기를,“묘청이 말한 바는 바로 성인(聖人)의 법이니, 어겨서는 안 됩니다.”하니,
왕이 이에 묘청을 수가 복전(隨駕福田)으로 삼고, 백수한을 내시(內侍)에 소속시켰다. 어가가 금암역(金巖驛) 길에 이르자,
갑자기 비바람이 일어나면서 어두컴컴해져서 위사(衛士)들이 넘어졌으며,
왕이 말고삐를 잡고 길을 잃은 채 혹은 진흙탕에 빠지기도 하고,
혹은 나무나 돌에 부딪치기도 하니, 시종들이 왕의 간 곳을 알지 못하여 궁인(宮人)들 중에는 우는 자까지 있었다.
저물녁이 되자 눈이 내리고 추위가 심하여 사람과 말과 낙타가 죽은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묘청이 말하기를,“내가 일찍이 이 날 바람이 있을 줄 알고 우사(雨師)와 풍백(風伯)에게 신칙하여 말하기를,
‘승여(乘輿)가 출발할 때 비바람이 일지 말게 하라.’ 하였더니,
허락해 놓고서 이처럼 식언(食言)을 하니, 얄미운 일이다.”하였으니,
그 허황하고 망령됨이 이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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