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판과 이웃하는 괌, 로타/루타, 티니언을 따라서 북쪽으로의 더 작은 크기의 소형의 섬들까지 기원전 2000년경에 처음으로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이들의 주요 이동수단은 카누였다.
15세기, 스페인인들이 항해 중에 괌에 처음으로 도착하여 차모로인과 마주쳤다. 그리고 스페인인들은 사이판을 합병했다.
사이판 섬(Saipan)은 전체 115.39 km²의 면적과 함께 서쪽의 태평양 (15°10’51”N, 145°45’21”E)에 있는 마리아나 군도에 속하는 15개의 열대 섬이 하나로 늘어선, 북마리아나 제도 미국 연방의 가장 큰 섬이자 수도이다.
2000년의 인구는 62,392명이었다.. 북위 15.25°와 동경 145.75°에 위치하며, 괌의 북쪽으로부터 대략 200 km 떨어진, 사이판은 20 km의 길이와 9 km의 폭을 가지고 있다. 그곳은 인기 있는 태평양 연안의 관광객 행선지이다.
1815년 경, 사타왈 출신의 많은 캐롤라이니언 족이 차모로족이 괌에 갇힌 시기 동안 사이판에 정착을 했으며, 차모로 종족의 땅과 권리의 상당한 손실을 초래했다.
1899년부터 베르사유 조약 발효 때까지는 독일이 사이판을 지배했으며, 1922년 이후에는 일본 제국이 신탁통치하는 남양 군도의 일부가 되었다.
일본은 사이판 섬에서
낚시 산업과 설탕 산업을 주로 개발했으며,
1930년대 이후로는 병참기지를 건설하면서
30,000명의 군인을 주둔시켰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가던 1944년 6월 15일, 미국 해병대는 일본 본토 공습을 위한 북마리아나 제도 장악의 일환으로 3주일 동안의 전투를 벌여 사이판 섬을 점령하고 비행장을 건설했다.
이 사이판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일본군들은 대부분 반자이 돌격 같은 방식으로 자살을 택했으며, 일본인들도 "반자이 절벽"이라 불리는 절벽에서 자살했다.이 곳에는 만세 절벽(Banzai Cliff)과 자살 절벽(Suicide Cliff)이 있다.
1986년 11월 북마리아나 제도가 미국에 가입하면서 미국령의 일부가 되었다. 북마리아나 제도와 미국은 북마리아나 제도가 확실한 연방법으로부터 면제받기로 동의하면서, 어떤 관련된 산업 관계와 이민을 포함했다. 한 가지 결과는 호텔과 관광의 증가였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옷 공장들 또한 문을 열었다;의복 제작은 섬의 주요한 경제적인 힘이 되었으며, 그들의 제품에 "made in the U.S.A"의 꼬리표를 붙임과 동시에 수천의 외국인 계약직 노동자들을 고용했다.
그들은 낮은 가격의 의복들이 미국 수입 관세로부터 면제되는 것과 함께 미국 시장을 공급하는 것을 지속했다. 이 공장들에서 고용자들이 경험한 작업 조건과 대우는 논쟁과 비평의 주제가 되었다
북마리아나 제도는 16개의 화산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지역 근처의 해안선은 사이판과 마나가하 섬을 포함하여 대부분 산호초로 되어 있다.
최고점은 아그리한섬의 965m이고, 마우그세섬은 침강하여 화구벽(火口壁)의 세 봉우리가 안에 석호(潟湖)를 에워싼 모양이 되었다.
전지역에서 사탕수수·코프라가 산출되며, 1960년대부터 티니안섬 등에서 젖소도 방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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