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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고려

혜종

by 산골지기 2017.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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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종은 912년 나주 흥룡동에서

태조 왕건과 장화왕후 오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왕건은 아들의 이름을 무(武)라 정하였다.

왕건과 오씨가 만났다는 나주 완사천(浣紗泉) 연못은 현재까지 전해오고 있고, 혜종이 태어난 마을은 후대에 가서 임금이 태어난 마을로 전하다가 왕을 상징하는 '용'(龍) 자를 써서 지명이 흥룡동(興龍洞)이 되었다.


 


태조는 궁예 휘하에서 나주를 정벌하고 그곳에 주둔할 때, 해주 호족 오부돈의 손녀이며 오다련의 딸인 오씨를 만나 혼인하였다.

첫 부인 신혜왕후에게 아들이 없었기에 그는 왕건의 장자였다. 그러나 서남해안의 호족인 나주의 오씨 집안 세력이 다른 호족들에 비교하여 병력이 약하여 이러한 출신 배경으로 지위가 불안하였으며, 왕건은 바로 원자로 책봉했다가 921년 그를 태자 무로 삼아 국본으로 정한다.

 그러나 외가의 가세가 약하여 권력 기반이 약했던 혜종은 후에 왕위쟁탈전에 휘말리게 되었다.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고 태조 왕건에 오른 후 장자 무가 7세때 태조 왕건은 그가 보위에 오를 덕이 있음을 알았으나 신하들의 반대가 있을 것을 걱정하여 상자에 자황포를 담아 장화왕후 오씨에게 보냈다. 왕후가 이를 대광 박술희(大匡 朴述熙)에게 보여[3]주었다.



태조의 뜻을 알아차린 박술희는 여론을 조성하고 태조에게 간청하여 921년 드디어 태자 무로 책봉되었다.[3]


921년(태조 4년) 박술희 등의 도움으로 태자로 책봉된 뒤 태조를 따라 후백제를 쳐서 공을 세웠다.


943년 태조가 죽자 즉위하였으나, 이복동생인 왕요(王堯)와 왕소(王昭)가 왕위를 엿보았다. 그들은 태조의 제3비인 신명순성왕후 유씨의 소생이며 충주 지역 호족이었던 유긍달(劉兢達)의 외손으로, 충주 유씨는 혼인을 통해 여러 세력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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