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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조선

남모를 노고

by 산골지기 2016.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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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청에서의 노역이 머리 세게 하였네

 

 

天祿之役 令人頭白
천록지역 영인두백


- 안정복(安鼎福, 1712~1791)의 『순암집(順菴集)』 권13 「잡저(雜著) 상헌수필(橡軒隨筆) 하(下)」에 실린 「전배저술(前輩著述)」 중에서

해설
   호학(好學)하였다는 공자의 애제자 안회(顔回)의 백발이나 하룻밤 편집으로 천자문을 펴낸 주흥사(周興嗣)의 백발에서 보이듯, 일반적으로 백발은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이자 상징으로 여긴다.

 

   순암(順菴) 안정복(安鼎福)은 장년에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문인이 되어 수많은 서책을 더욱 섭렵하면서 『동사강목(東史綱目)』이라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 사서(史書)를 남겼다. 그 외에도 평생을 학문에 정진하며 수십여 종의 저작을 남겼으니, 하나의 저술을 완성하기 위해 백발이 될 정도로 공들였던 선배들의 노력을 아마도 남다르게 경외하였을 것이다. 또한 그런 노력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가는 것을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이 구절은 선조(宣祖) 18년(1585)부터 설치된 교정청(校正廳)에서 경서(經書)의 현토를 확정하고 출간하는데 참여했던 홍기(洪{耆+見})의 말로 이와 관련한 일화를 안정복은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홍기와 친분이 있었던 어떤 재상이 자기를 능가하는 그의 명성을 시기하였는데, 지금 통행되고 있는 경서의 인본에 오류가 많다는 것을 빌미삼아 그가 교정을 담당하도록 임금에게 추천하여 윤허를 받았다. 이로 인해 홍기가 명을 받들어 오랜 세월을 두고 연구한 덕분에 잘못된 어구나 글자들이 모두 바로잡히게 되었으며, 자획의 편방까지도 조금도 틀리거나 잘못된 것이 없게 되었다. 지금 성균관의 그 사서삼경(四書三經) 판본을 선본(善本)이라고 한다.
   내가 일찍이 홍기가 어떤 사람에게 보낸 편지를 본 일이 있는데, ‘교정청에서의 노역이 사람의 머리를 하얗게 만들었다.[天祿之役 令人頭白]’하였으니, 그가 기울인 노력이 또한 매우 대단했던 것이다. 이로 인하여 건강을 잃어서 미처 승진도 하기 전에 죽고 말았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애석해 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책을 지금까지 사람들이 읽으면서도 아무도 그것이 홍기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알지 못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요즘 편리하게 흔히 이용하는 모든 서비스는 아마 누군가가 남모를 공력을 들여 이루어 놓은 것들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편리함 이면에 깃들어 있는 노고를 그저 간과하며 소중히 여길 줄 모른 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덧붙여 머리 셀만큼 노역에 지쳐 죽고 만 홍기의 이 일화에서 을의 재능을 시기하며 교묘하게 혹사시키는 갑질이 만연된 현 세태가 겹쳐 보여 씁쓸하다.

출처: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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