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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고려

고려역사 이모저모

by 산골지기 2024.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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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나라 간섭기

원나라 간섭기는 고려가 몽고에게 항복한 후부터 전개가 되게 됩니다.

고려는 고종시기에 몽고의 침입에 항전을 하다가 원종때에 몽고에 항복을 하게 되고요 충렬왕시기부터 원나라의 간섭을 받게 됩니다.

원나라 간섭기에 고려의 왕은 원나라 공주와 결혼을 해야 했습니다.

원나라 간섭기의 고려왕인 25대 충렬왕은 24대 원종의 맏아들로 고려왕이면서, 원나라의 사위로 살아간 왕 입니다.

26대 충선왕은 25대 충렬왕의 아들인데요 우리역사 최초의 혼혈왕입니다.

충선왕은 다양한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원의 간섭과 권문세족의 반발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게 됩니다.

27대 충숙왕은 26대 충선왕의 둘째 아들인데요 충선왕의 조카인 심양왕 고와의 정권다툼에 시달렸던 왕입니다.

28대 충혜왕은 27대 충숙왕의 맏아들인데요 방탕한 행동으로 원나라에 의해 폐위되었다가 복위가 되었습니다.

29대 충목왕은 28대 충혜왕의 아들인데요 8세에 즉위해 12세에 죽었던 비운의 왕입니다.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어머니인 덕녕공주가 섭정을 하였습니다

29대 충목왕
충혜왕의 아들
8세에 즉위
어머니인 덕녕공주가 섭정

 

30대 충정왕은 28대 충혜왕의 서자인데요 12세에 원나라로부터 왕으로 책봉되었으나 3년만에 폐위가 되었습니다.

원나라 간섭기의 고려왕

25대 충렬왕

26대 충선왕

27대 충숙왕

28대 충혜왕

29대 충목왕

30대 충정왕

 

*최초의 혼혈왕인 충선왕

원나라 간섭기에 원나라 공주에서 태어난 첫왕은 충선왕인데요 충선왕은 우리역사상 최초의 혼혈왕으로 불립니다.

충선왕
최초의 혼혈왕
연경에 만권당을 설치
다양한 개혁정치 전개

 

우리역사상 최초의 혼혈왕인 충선왕은 다양한 개혁정치를 펼치게 되고요 왕위에서 물러난 후에는 원나라의 수도인 연경에 만권당을 설치하게 됩니다.

원나라의 수도인 연경에 설치된 만권당에서는 고려와 원나라의 학자들이 활발하게 교류를 하였습니다.

 

* 고려말기

고려말기는 원나라의 간섭이 끝난 이후의 시기를 말하는데요 공민왕 시기부터 시작을 하여 우왕, 창왕, 공양왕으로 전개가 되는 시기를 말합니다.

고려 말기의 왕
공민왕
우왕
창왕
공양왕

공민왕은 원나라가 쇠약해진 틈을 타서 원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는 정책을 펼쳤고요 원나라와 결탁한 권문세족을 누르기 위하여 다양한 개혁정책을 펼치게 됩니다.

공민왕은 신돈을 통하여 개혁을 하게 되는데요 당시 개혁정치를 위하여 전민변정도감을 설치 하였습니다.

원나라의 간섭이 끝난 이후의 시기인 고려말기에는 신진사대부들이 지배층을 형성을 하면서 다양한 개혁을 펼치게 됩니다.

신진사대부들은 성리학으로 무장한 가운데 조선건국의 주도세력이 되게 됩니다.

 

*고려 시대의 교육

고려 시대에는 교육을 장려하였는데요 고려시대의 교육은 관리 양성과 유학 교육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관리 양성과 유학 교육을 위하여 고려시대에는 많은 학교를 세우고 교육을 장려하였는데요 중앙에는 국립 대학으로 국자감이 설치되었습니다.

성종시기에 설치한 국자감에는 국자학, 태학, 사문학과 같은 유학부와 율학, 서학, 산학 등의 기술학부가 있었습니다.

기술학부보다는 유학부가 상위를 차지하였는데요 국자감의 유학부에는 문무관 7품 이상 관리의 자제가 입학하였습니다.

그리고 국자감의 기술학부에는 8품 이하 관리나 서민의 자제가 입학하였습니다.

중앙에 국자감을 설치한 고려는 지방에는 향교를 설치하여 지방 관리와 서민 자제의 교육을 담당하였습니다.

국자감
성종시기에 설치
국자학, 태학, 사문학---- 유학부
율학, 서학, 산학 ---- 기술학부
기술학부--- 8품 이하 관리나 서민의 자제가 입학

 

 

*고려시대의 사학과 관학

고려 중기에는 최충의 문헌공도를 비롯한 사학 12도가 융성하였습니다. 사학에서 교육을 받은 학생이 과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자 국자감의 관학 교육은 위축되었는데요 관학이 위축이 되자 정부는 관학 진흥을 위한 여러 시책을 추진하였습니다.

관학진흥책은 예종시기에 주로 이루어졌는데요 예종 때에는 국자감을 재정비하여 9개의 전문 강좌를 설치하였습니다.

또 예종시기에는 양현고와 같은 장학 재단을 두어 관학의 경제 기반을 강화하였습니다.

의종시기에 무신정변이 일어난 후 무신 정권기에는 교육 활동이 크게 위축되었습니다.

원나라 간섭기인 충렬왕 때에 국학을 성균관으로 개칭하였습니다.

또 충렬왕 시기에는 공자 사당인 문묘를 새로 건립하여 유교 교육을 진흥하였습니다.

원나라의 간섭에서 벗아나는 시기인 공민왕시기에는 성균관을 순수한 유교 교육 기관으로 개편하고 유교 교육을 강화하였습니다.

공민왕
성균관을 순수한 유교 교육 기관으로 개편
유교 교육을 강화

 

 

*사학 12

고려 문종시기에는 사설교육기관인 사학들이 번성을 하였습니다.

사학 12도는 고려 시기에 개경(開京)에 있었던 12개의 사립 교육 기관을 말합니다.

고려시대의 사학은 최충에서 시작이 되었는데요 문종시대의 문신 최충이 벼슬에서 물러난 후 자신의 집에 9재라는 사립 학교를 열어 후진을 양성한 것이 시초입니다.

최충이 9재학당을 설립한 이후 고위 관직을 역임한 유신들이 사립 학교를 열었는데요 고려의 수도인 개경에는 최충의 9재를 포함하여 총 12개의 사학이 설립되었습니다.

사학 12(私學十二徒)의 교육 내용과 성격은 국학(國學)인 국자감(國子監)과 대체로 비슷하였지만 국립교육기관인 국학이 크게 부진을 하면서 과거를 준비하는 이들은 권위 있는 유학자가 세운 사학으로 몰리게 됩니다.

당시 귀족 자제들은 국립교육기관인 국자감보다 사학을 더욱 선호하였습니다.

고려 문종시기에 번성한 사학 12도는 고려 말 충렬왕 이후 국학이 크게 진흥되면서 점차 국학의 예비 과정으로 약화되었고요 고려말인 1391년에 폐지되었습니다.

사학 12
고려 문종시기에 번성
충렬왕 이후 국학의 예비 과정으로 약화
1391년에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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