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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근현대사

언더우드

by 산골지기 2018.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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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주일인 1885년 4월 5일에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와 함께 인천에 입국한 언더우드는 아직 조선 정부에서 선교활동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중원에서 물리와 화학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다.

 

그는 조선어 문법책을 영어로 집필하였다. 그 후 성서 번역 위원회 초대 위원장, 대한기독교서회 회장, 한국 기독교 교육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한편 예수교학당, 서울 구세학당, 연희전문학교(현재 연세대학교)를 설립하였다. 또한 교회 연합 운동을 지도하는 등 한국의 종교·문화·언어·정치·사회 등 여러 분야에 많은 일을 남겼다.

개신교 선교사로서의 업적은 교회 설립과 전도 여행이었다. 1887년에 조선인 교우들의 참여로 조선 장로교 교회사에서 첫 장로교 교회인 정동교회(현재 새문안교회)를 설립하였고, 1900년도 초 개신교 양평동교회를 설립하였다.

 

전도가 활발한 지역이었던 북한 지역에서의 전도 여행을 3차례나 하였다. 학생 시절에 피어선 박사에게 영향을 받았던 인연으로 후에 피어선기념성경학원(현재 평택대학교)에서 교장을 1912년 부터 1916년 까지 역임하였다.

성서 번역에도 공헌하였는데 1887년에 상임성서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아펜젤러와 함께 마가 복음서의 한글판을 번역·출간하였다. 또한 원두우는 뛰어난 복음주의 설교가이기도 했다. 기독교 사상에 연재되는 원두우 설교집에 따르면 예수의 부활,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알기 쉽게 말했다.

2014년 기독교사상에 연재된 이야기에 따르면, 원두우는 일제에 의해 반일인사로 여겨질만큼 한국민중과 연대하는 선교사였다. 그는 라디오 방송으로써 "참고 견딘다면 해방의 날이 올 것입니다."라고 연설하기도 했으며, 친일 성향의 선교사, 일제와 갈등을 겪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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