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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15일, 제암리에 일본군인 13명이 들이닥쳤다. 3.1운동 직후, 만세시위로 뒤숭숭해진 마을의 치안을 위한다는 명목이었다.
일본군은
기독교도·천도교도 약 30명을
교회당 안으로 몰아넣은 후 문을 잠그고 집중사격을 퍼부었다.
이 같은 만행의 증거를 없애기 위해 일본군은 교회당에 불을 지르고, 바깥으로 나오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까지 모두 타죽게 만들었다.
이 같은 사실은 제암리를 방문한 선교사들과 외신에 의해 전 세계로 알려졌다. 특히 스코필드 박사가 이사건을 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부 일본인들이나 종교단체에서 용서와 화해를 청하며 제암리를 방문했으나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죄 표명은 없었다
● 제암리 학살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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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299호로 지정
기독교계에서는 "제암리감리교회 사건"으로 부르며, 줄여서 '제암리 사건'이라고도 부른다.
사건 지역을 사적 제299호로 지정했다.
한국 감리교회에서는 제암리 사건을 감리교회를 넘어선 기독교적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민족저항운동이었고, 이에 대한 일제의 계획적 만행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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