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 강화도로 도읍을 옮긴적이 있습니다. 또 팔만대장경 조판 작업이 이루어진 곳도 강화도입니다
근대에는 서양함대가 강화도를 침입하면서 병인양요과 신미양요가 있었습니다
1866년(고종 3년)에 흥선 대원군의 천주교 탄압(병인박해)을 구실로 삼아 외교적 보호(diplomatic protection)를 명분으로 하여 프랑스가 일으킨 제국주의적인 전쟁이다.
로즈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함대 7척이 강화도를 점령하고 프랑스 신부를 살해한 자에 대한 처벌과 통상 조약 체결을 요구했다.
흥선 대원군은 로즈 제독의 요구를 묵살한 뒤 훈련 대장 밑에 순무영(巡撫營)을 설치해 무력으로 대항하였다. 조선군이 완강히 저항하자 프랑스 해군은 40여일 만에 물러났다.
프랑스가 병인양요를 일으킨 진짜 이유는 천주교 박해에 대해 보복한다는 구실로 침범하여 조선의 문호를 개방시키려는 것이었다
● 병인양요 : 고종 3년(1866년)에 병인박해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군이 침입한 사건.
● 신미양요 : 고종 8년(1871년)에 미국이
제너럴셔먼호사건을 빌미로 조선을 침략한 사건.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미국은 여러 차례 조선에 배상금 지불과 통상 조약 체결을 요구하였으나 흥선 대원군은 이를 거부하였다. 그러자 미국은 1871년 군함 5척과 1,200여 명의 병력으로 강화도를 침공하였다.
미군이 초지진을 함락하고 광성보를 공격해 오자, 어재연 등이 이끄는 조선군 수비대는 격렬한 항전을 벌였지만 전력의 차이가 커 함락되고 말았다.
그러나 흥선 대원군은 민심을 결속시키고 장기전에 대비하면서 미군을 압박하였다. 결국 미군은 조선을 개항 시키는 게 쉽지 않다고 깨닫고 물러갔는데, 이를 신미양요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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