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세봉이 주축이된 조선혁명군은 3부에서 나눠진 국민부를 기반으로 남만주에서 조선혁명당이 조직되고, 이의 예하 부대로 편성되었다.
총사령관 양세봉을 중심으로 대도회가 이끄는 중국 의용군과 연합하여 활발한 국내 진입 작전을 전개한다. 이후 양세봉은 암살을 당하게 된다.
조선혁명군은 영릉가전투(1932), 흥경성전투(1933)에서
중국의 의용군과 연합하여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게 된다.
대한독립군은 1919년 12월에 북간도에서 홍범도를 사령관으로
봉오동을 근거지로 창설되었다.
1920년 봉오동 전투에서 대승하고, 청산리 전투에서도 크게 공헌하며 봉오동 전투에서 안무의 대한국민회군, 최진동의 군무도독부군과 연합하여 대한북로독군부를 편성한다.
3부에서 나눠진 혁신의회를 기반으로
북만주에서 지청천 등이 1930년 한국독립당을 조직했는데
한국독립군은 한국독립당의 예하 부대이다.
한국 독립군은 사령관 지청천을 중심으로
중국인 시세영 등이 이끄는 중국 호로군과 연합작전을 수행한다.
한국 독립군은 쌍성보 전투(1932), 경박호 전투, 사도하자 전투,
동경성 전투, 대전자령 전투(1933)에서 일본군을 격파한다.
이후 한국 독립당은 난징의 한국 형명당과 통합하여
신한독립당으로 발전하게 된다.
1930년대 만주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군대는 조선혁명군과 한국독립군이다.
이후 김원봉이 화북지방을 중심으로
조선의용대를 조직하였으며 1940년에는
한국광복군이 조직이 되었다.
김두봉은 조선의용군을 조직하고 중국의 팔로군과 연합작전을 펼쳤다.
일제가 문화통치를 실시하는 상황에서 우리민족은 해외에서 활발한 독립활동을 펼쳤다.
1920년에는 홍범도 장군이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고 이어서 김좌진 장군이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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