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고대

전기 가야 연맹

산골지기 2016. 9. 24.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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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伽耶)는 서기 전후로 김해 등지에 있던 구야국(狗邪國)을 중심으로 변한의 소국들이 결집해 전기 가야 연맹을 성립하였으나 고구려의 공격으로 금관국 중심의 전기 가야 연맹이 와해되자 5~6세기 경 피해를 거의 입지 않은 대가야를 중심으로 후기 가야연맹을 만들었었다.

그러나 이 역시 신라와 백제의 사이에서 위협을 받으며 서서히 무너지고 562년 멸망했다.

 

전기 가야연맹은 김해 지방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철을 바탕으로 국력을 키웠으며 왜 등지와 교역을 하기도 했었다.

전기 가야연맹의 철기 문화는 뛰어난 수준으로 평가되고있다. 당초에 변한(弁韓) 또는 변진(弁辰)의 각국의 왕들이 마한의 왕에게 임명된 마한 사람일 정도로 마한의 지배를 받았다.

 

인근의 진한도 마찬가지였었다. 기원전 1세기에 진한이 사로국을 중심으로 결집해 마한으로부터 독립하고 서기 9년에 마한이 백제에 패망해 합병되는 등 마한의 영향력이 소멸하여가자 기원후 1세기를 전후해 기존 변한의 소국들은 김해의 구야국을 중심으로 국제무역을 기반으로 개별적으로 발전하면서 다소 엉성한 국가연맹체를 구성했었다.

구야국의 왕위를 두고 구야국왕인 수로왕이 신라 사람인 석탈해와 왕권다툼을 벌여 이겼고 석탈해는 신라로 돌아가 탈해이사금이 되었다. 탈해이사금 21년인 77년에는 황산진(黃山津) 어구에서 신라와 분쟁이 벌어지고 94년에는 전기 가야연맹 군이 마두성(馬頭城)[1] 을 함락하고 96년에도 가야군과 신라군의 분쟁이 벌어졌었다. 115년에는 신라군이 전기 가야연맹을 침공했다가 다시 황산하(黃山河)[2] 에서 대참패하고 물러났었다.

231년에는 감로국이 신라에 병합되고 전기 가야연맹은 철 공급권을 이용해 일본의 소국들로부터 병력을 수입하고 그들을 부추겨 신라를 공격했었다. 전기 가야연맹과 신라는 초기부터 경쟁 관계이었다.

 전기 가야연맹의 구야국

지금의 김해평야인 고김해만이라는

옛 바다를 천혜항구로 무역을 발달시켰던

전형적인 상업국가로 외국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문화를 발전시키고 이를 또

 일본과 변한에 공급하여 중계무역으로

이득을 보면서 영향력을 행사했었다.

 

요동, 요서의 한사군들도 변진과 전기 가야연맹의 철을 수입하였었다. 일본은 당시에 제철 기술 등이 전무해 전적으로 전기 가야연맹의 철에 의지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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