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고려
동경민란
산골지기
2016. 9. 12.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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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민란 중에서는 이비를 두목으로 한 일당과 패좌를 두목으로 한 일당 등이 가장 완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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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신라 부흥을 명분으로 삼아 민심을 선동하였고,
집권자 최충헌은 연이은 반란을 소탕하기 위하여 대규모의 토벌군을 동원하였다
난이 평정된 후 1204년 조정에서는 동경을 경주로, 유수를 지사(知事)로 격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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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진안동도(尙晉安東道)
반군 토벌에 공을 세운 안동도호부
(安東都護府)를 대도호부(大都護府)로 승격시키고,
경상도의 이름을 상진안동도(尙晉安東道)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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