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로아스터교와 마니교
조로아스터교는 다른 종교보다
인간의 자유 의지와 도덕성을 높이 샀다.
어느 지역, 어느 시대에나 적용될 수 있었던 조로아스터교의 보편성은 페르시아 제국이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여러 민족을 다스리고 질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조로아스터교는 페르시아 제국을 통해 서아시아 여러 지역에 널리 퍼졌으며 인도 등지에도 전파되었다.
그리고 사산 왕조 페르시아 때는 국교가 되었다.
한편, 조로아스터교의 교리 중에서 선과 악의 대결, 최후의 심판, 천국과 지옥, 구세주 등의 내용은 서아시아에서 발달한 유대교와 크리스트교, 이슬람교뿐만 아니라 멀리 인도의 대승 불교 같은 세계 종교에 큰 영향을 끼쳤다. 마니교는 3세기 무렵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마니(Mani)가 창시한 종교이다.
당시 조로아스터교가 번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마니는 조로아스터교의 선과 악, 광명과 암흑 같은 이원론을 중심으로 하여 크리스트교, 불교, 바빌로니아 지역의 원시 신앙 등을 받아들여 마니교를 창시하였다.
창시자인 마니에 대해서는
자세한 내용이 전하지 않는다.
다만 마니는 스스로 아담과 여러 예언자, 조로아스터와 예수를 잇는 마지막 예언자로 칭하였고,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박해를 받아 죽었다는 내용이 전해진다.
마니가 죽은 뒤 마니교는 널리 퍼져 시리아, 이집트, 북아프리카, 에스파냐, 프랑스 남부 등에 전파되고 마니교 사원이 각지에 세워졌다.
7세기 무렵에는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에까지 전파되어 당나라의 수도 장안에
마니교의 사원이 세워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당나라의 황제 무종(武宗) 때 불교가 금지되며 마니교도 함께 금지되어 세력이 약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