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삼국시대의 미술과 음악

by 산골지기 2023. 4. 23.
728x90

 

 

고분 벽화

삼국 시대에는 귀족 중심의 미술이 발달하였으며, 특히 고분 미술과 불교 미술이 뛰어났다.

고구려의 미술은 힘과 정열이 넘쳤고, 백제의 미술은 우아하고 세련되었으며, 신라의 미술은 소박한 가운데 조화 있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이와 같이 삼국의 미술은 그 국가의 성격에 따라 각기 차이가 있었으나,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점차 많은 공통성을 지니게 되어, 후에 민족 문화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삼국은 고분을 통하여 많은 예술품을 남겼는데, 고분은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고대인들의 정신과 지혜가 담긴 예술의 보고이다.

고구려의 미술은 옛 수도였던 국내성과 평양성 부근에 있는 고분을 통해 알 수 있다. 고구려 고분은 초기에는 돌을 쌓아올린 돌무지무덤이 만들어졌는데, 대표적인 것이 만주 집안에 있는 장군총이다.

후기에는 흙으로 덮은 봉토 내부에 돌방이 있는 굴식 돌방무덤이 주류를 이루었다. 굴식 돌방무덤의 일부 돌방 안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쌍영총, 무용총, 강서 고분 등이 유명하다. 여기에는 풍속도, 수렵도, 무용도, 사신도 등이 그려져 있어, 고구려인의 씩씩한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특히, 강서 고분의 돌방에 그려진 사신도는 고구려 고분 벽화 중에서도 높은 회화 수준을 보여 주는 것으로, 힘과 패기가 넘쳐 흐르고 있다.

백제의 고분은 서울, 공주, 부여에 많이 남아 있다. 서울 석촌동에 있는 백제 고분은 고구려 초기의 고분과 비슷한 돌무지무덤이다. 이를 통하여 백제 왕실이 고구려와 깊은 관련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공주의 무령왕릉은 봉토 안의 방을 벽돌로 쌓아올린 무덤인데,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여기에서는 무령왕에 대한 기록인 지석과 함께 금제 관식, 무기, 그릇, 구리 거울 등 많은 껴묻거리가 발견되어 당시의 발달된 공예 기술을 엿보게 해 준다.

백제의 고분에도 고구려의 고분과 같이 벽화를 그린 것이 있는데, 부여 능산리 고분의 사신도는 매우 세련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신라의 고분은 수도인 경주 부근에 많이 남아 있다. 신라의 고분은 4세기 이후 거대한 돌무지 덧널무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고분에서는 금관을 비롯하여 금제 장신구, 유리 제품, 생활 도구 등 많은 껴묻거리가 발견되어 신라 공예품의 보고가 되고 있다. 특히, 금관총, 천마총 등지에서는 금관이 출토되었고, 천마총에서는 천마도가 발견되어 신라 미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 주고 있다.

불교 미술

삼국은 중국에서 불교를 받아들여 그 문화의 폭을 넓히는 동시에, 큰 절과 탑을 세우고 불상을 만드는 등 불교 미술을 크게 발전시켰다. 따라서, 불교 미술은 고분 미술과 함께 삼국 시대 미술의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다.

삼국의 건축물 중 대표적인 것은 탑으로서, 처음에는 목탑이 많이 세워졌으나, 후에는 주로 석탑이 만들어졌다. 백제의 석탑으로는 목탑의 건축 양식을 따른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과 부여의 정림사지 5층 석탑이 유명하다. 특히, 정림사지 5층 석탑은 균형이 잘 잡히고 아름답게 만들어진 걸작품이다. 신라의 탑으로는 전탑의 형식을 따른 분황사 모전 석탑이 남아 있으며, 황룡사 9층탑은 국력을 기울여 세운 것이었으나, 고려 때 몽고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졌다.

 

삼국의 불상으로는 신라의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이 가장 대표적이다. 그 밖의 불상으로는 독특한 개성을 보여 주는 고구려의 연가 7년명 금동 여래 입상, 친근감 있는 미소를 머금고 있는 백제의 서산 마애 삼존불상이 유명하다.

 

한편, 최근 부여의 백제 절터에서 발견된 금동 용봉 봉래산 향로는 백제 문화의 우수성과 독창성이 한층 돋보이는 걸작품으로, 백제의 사상과 공예 기술의 참맛을 보여 주고 있다.

시가와 음악

우리 민족은 예부터 노래와 춤을 좋아했는데, 음악은 삼국 시대에 이르러서 중국 음악과 불교 음악의 영향을 받아 더욱 발달하였다.

고구려의 시가로는 유리왕이 지었다는 황조가와 을지문덕이 지은 5언시가 전해지고, 백제의 시가로는 정읍사와 지리산가 등이 전해지며, 신라의 시가로는 혜성가, 서동요 등의 향가가 전해진다.

한편, 삼국에서는 여러 가지의 악기가 만들어졌고, 노래도 지어져 음악이 크게 발달하였다. 고구려에는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 등 많은 악기가 있었고, 왕산악은 7현금을 개량하여 거문고를 만들고 100여 곡을 작곡하였다. 백제의 음악은 고구려와 비슷하였으며, 일본에 전해져서 고대 일본 음악에 큰 영향을 끼쳤다.

신라의 악기로는 거문고, 가야금, 비파, 피리 등이 있었다. 옥보고는 거문고를 잘 타서 신라 음악에 맞는 30여 곡을 지었으며, 백결 선생은 방아타령을 남겼다. , 대가야 출신의 우륵은 진흥왕 때 가야금을 만들고 12곡을 작곡, 보급하였다.

금동대향로

이 향로는 부여 능산리 고분 근처에 위치한 절터에서 발견되었다. 전체 높이가 64cm로, 동북 아시아에서 출토된 향로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향로는 4개 부분으로 되어 있다. 뚜껑 부분은 봉황이 여의주를 목에 끼고 날개를 활짝 펴서 날아가려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아래에는 5명이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상, 크고 작은 산, 인물상, 동물상, 기마상, 불꽃무늬 등 화려한 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몸통에는 연꽃, 물고기, 동물상 등 여러 가지 무늬가 새겨져 있다. 밑에는 용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모습으로 몸통을 입으로 받들고 있고, 또 구름과 인동무늬가 소용돌이치는 모습으로 꾸며져 있다.

이 향로는 백제 문화의 우수성과 독창성이 한층 돋보이는 작품이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