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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고대

고구려

by 산골지기 2018.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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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국가성립이 부족간의 연합으로 이루어졌는데요 고구려를 구성하는 5개의 주요 부족이 5부족연맹을 형성했다는 것입니다

 

고구려는 6대 태조태왕 이후 절대 왕족인 중앙의 고씨 계루부(桂婁部)를 포함한 초기 왕족인 해씨 소노부(消奴部) 왕비 배출 부족인 북부의 절노부(絶奴部) 동부의 순노부(順奴部) 남부의 관노부(灌奴部) 등 다섯 부족으로 이루어진 연맹 왕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초기 왕족---

해씨 소노부

 

왕비 배출 부족---

북부의 절노부

 

 

고구려는 국가적 체계를 마련하고 계속해서 주변 유목 부족과 연맹체 침략하여 북옥저와 졸본, 국내성 주변의 지역을 흡수하였다. 고구려가 이렇게 성장하자 이에 대항하는 국가가 늘었다. 농안을 근거지로 성장한 부여는 기원전 6년13년 침공하고 복속하기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세력을 키운 고구려가 21년, 부여 정벌을 감행하여 부여왕 (대소왕)을 죽이고 돌아왔다. 이후 부여는 고구려를 섣불리 침공하는 일이 없어졌다.

 

부여를 물리친 고구려는 더욱 영토를 넓혀갔다. 그러자 28년 한나라가 이에 위협을 느껴 군사를 일으켰다. 하지만 고구려는 국내성에서 농성을 펼치며 막아냈고, 32년 낙랑국도 일시적으로 정복하는 등 만주와 북부 한반도에서 위세를 떨쳤다.

53년에 즉위한 태조왕(太祖王) 때에 이르러 고구려의 5부족은 중앙 행정 단위인 5부로 통합되었다. 이에 따라 고구려는 내부 자치권을 제외한 군사권과 외교권이 에게 귀속되는 고대 국가로 발전하였고, 이후로 소노부 왕가가 물러나고 계루부 출신의 고씨가 독점적으로 왕위를 계승하였다.

 

따라서 고구려의 진정한 건국은 태조 때로 본다.

 

그는 주위의 여러 부족을 정복하여 동으로는 옥저·동예(東濊), 남으로는 살수(薩水), 북으로는 부여(夫餘)를 압박하고, 서로는 한의 요동군·현도군과 대립하였다. 그리하여 1세기에서 2세기에 걸쳐 고구려는 고대 정복국가로서의 위세를 떨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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