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선18

숙종 숙종은 1674년 8월 18일 현종이 34세로 승하하자 8월 23일 14세의 소년왕으로 즉위한다. 보통 왕이 즉위하는 것은 선왕이 승하하고 대렴을 마친 5일 후다. 8월 15일에 탄생한 숙종의 나이가 우리나이로 치면 만 13세에 막 들어선 때였다. 전례로 보아 성년인 20세까지 대비가 수렴청정을 해야 마땅하지만 숙종은 곧바로 친정에 들어섰다. 숙종의 어머니인 명성왕후는 성격이 거칠었다. 명성왕후의 아버지인 김우명이 복창군과 복평군이 궁궐을 드나들며 궁녀와 사통해 임신한 사건인 일명 '홍수의 변'을 고변하자, 남인들은 김우명이 무고한 왕자를 죽이려 한다고 김우명을 벌주자 한다. 그러자 정청에 달려 나와 마루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며 울부짖어 대신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든 왕비다. 더 해괴한 일은 아버지 .. 2016. 6. 20.
문익점과 목화 문익점에 의한 목화씨의 전래와 재배 및 목면의 생산은 우리나라 직물사뿐 만 아니라, 산업구도나 생활문화에도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의생활 향상에서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고, 씨아나 물레, 가락, 날틀 같은 면직기구의 제작은 생산도구 제작의 단초를 열었다. 탈지면은 지혈이나 외과치료용으로 쓰이고, 솜은 초나 화약의 심지로 유용 되었다. 내구성이 강한 무명실로 만든 바느실이나 노끈, 낚싯줄, 그물은 일 상용품을 일신시켰다. 그런가 하면 무명은 물물교환에서 통화수단으로 이 용되기도 하고, 일본이나 중국에 대한 주요 수출품의 하나이기도 했다. 고려조 우왕 때에 문익점이 살던 마을인 배양리에 효자비를 세우고, 조선 정종 때는 그가 세상을 뜨자 묘사를 짓게 했다. ◆ 조선시대 에도 추앙된 문익점 태종 때는 조선왕조.. 2016. 6. 20.
덕수궁 조선시대의 궁궐로서 경운궁으로 불리었다. 조선말엽에 고종황제가 1907년 왕위를 순종황제에게 물려준 뒤에 이곳에서 계속 머물게 되면서 고종황제의 장수를 빈다는 뜻의 덕수궁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덕수궁 자리에는 조선 9대 임금인 성종의 형 월산대군의 집이 있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한양으로 돌아온 선조는 궁궐이 모두 불에 타고 없어서 임시로 월산대군의 집을 거처로 정하고 선조 26년(1593)부터 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근처의 계림군과 심의겸의 집 또한 궁으로 포함하였다.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은 즉위 3년(1611)에 이곳을 경운궁으로 고쳐 부르고 1615년 창경궁으로 옮길 때까지 왕궁으로 사용하였다. 그후 선조의 왕비인 인목대비가 경운궁으로 쫓겨나와 있게 되었는데 그 후로 광해군은 이.. 2016. 6. 17.
조선왕조의궤 의궤는 조선왕조에서 유교적 원리에 입각한 국가 의례를 중심으로 국가의 중요 행사를 행사 진행 시점에서 당시 사용된 문서를 정해진 격식에 의해 정리하여 작성한 기록물이다. 같은 유교문화군에 속하는 중국, 일본, 베트남 등에서는 의궤의 체계적인 편찬이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의궤는 조선시대 600여년에 걸쳐 (1392-1910) 왕실의 주요 행사, 즉 결혼식, 장례식, 연회, 사신영접 등 뿐 아니라, 건축물·왕릉의 조성과 왕실문화활동 등에 대한 기록이 그림으로 남아져 있어 600여년의 생활상을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희소성을 가지고 있다. 총 3,895 여권의 방대한 분량에 이르는 의궤는 왕실의 주요한 의식이 시기별, 주제별로 정리되어 있어서, 조선왕조 의식의 변화 뿐 아니라 동아시아 .. 2016. 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