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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5

종교 자유 기사에 보니 돈을 주고 알바를 고용해서 교회 출석시킨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알바 사이트에 알바를 구한다고 하면서 내용은 3시간 출석해서 설교를 들어주면 알바 사례를 한다고 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반드시 나쁘다고만은 하기가 어려울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이런 유형의 일자리까지 생긴다고도 하던데 좋게 보면 우리나가가 그만큰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도 할수가 있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없는 나라는 종교도 강압적이고 강제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돈을 받고 출석하기는 커녕 출석하기 싫어도 출석을 해야 하죠 우리나라는 종교의 자유가 매우 잘되어 있다고 봅니다 대표적인 종교도 강제적으로 종교를 강요하는것은 안되는 분위기가 어떻게 보면 자유주의 아래이기 때문에 가능할것 같습니다. 중국에서는 선교를 할수는 있는데 종교를 강요하.. 2016. 5. 24.
평양 첫 번째 교회인 ‘널다리골교회’ 모펫 목사가 노방전도를 하다가 후에 회개하고 유명한 목사가 된 이기풍의 돌팔매에 맞아 피를 흘렸다는 이야기는 조선초기선교사상 잘 알려진 에피소드이다. 그는 1893년 평양에 첫 번째 교회인 ‘널다리골교회’를 세웠다. 후에 ‘장대현교회’로 개칭되어 해방후 북한이 강제로 폐쇄할 때까지 서북지역의 대표적인 교회로 성장했다. 그는 특히 조선인 조사들을 앞세워 평북지역에는 김관근, 평남지역에는 한석진, 황해도 지역에는 서상륜을 대표자로 임명하고 ‘팀웍’선교를 시행하면서 교회를 세우고 제자들을 키웠다. 이 지역에 그가 직, 간접으로 세운 교회들이 수없이 많았다. 널다리골 교회 --- 장대현 교회의 모태 무엇보다도 모펫의 가장 큰 업적은 지도자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기독교 교육에 힘 쓴 것이다. 2016. 5. 4.
3.1운동과 교회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 파고다공원(현 탑골공원). 약속 시간이 지났는데도 민족대표 33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민족대표들은 독립선언식 장소를 태화관으로 옮겼지만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른 채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군중 속에서 한 청년이 나와 팔각정 단상으로 올라갔다.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힘주어 읽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하노라….”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청년은 언더우드 선교사가 설립한 경신학교를 나와 해주 본정교회를 섬기는 신실한 그리스도인 정재용이었다. 그는 3·1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전날 황해도 해주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에 왔다. 독립선언서 낭독이 끝나자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종로.. 2014. 10. 5.
작은 도서관 "우리 아이들이 사는 곳은 깊고 작은 산골이지만 가슴 속 꿈은 도시의 아이들보다 컸으면 좋겠어요." 폐축사를 없애고,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 문화적으로 소외된 산골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기 위해 땀 흘리는 우성익 목사(남원노회 쌍치소망교회). 아이들의 꿈과 신앙이 크게 자랄 수 있는 공간이길 바라며 '꿈 땅 작은 도서관'이라 이름 짓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사역을 전개하는 그를 만났다. 지난 8월 25일 굽이굽이 내장산 산길을 따라 찾아 들어간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운암리. 그곳은 호남고속도로 정읍 IC를 빠져나와 차를 타고도 50분 이상 달려야 닿을 수 있는 고즈넉한 산골 마을이다. 유일한 대중교통인 버스 운행은 하루 세 차례, 동서남북 사면을 둘러보아도 온통 높은 산뿐인 마을엔 안개와 구름.. 2014. 10.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