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고대

발해의 의의

산골지기 2016. 9. 24.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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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는 고구려가 멸망한 지 30여 년이 지난 뒤인 698년에 건국되었다. 단기간에 급속히 발전하여, 727년에 일본에 보낸 무왕의 국서에서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였고 부여의 유속(遺俗)을 잇게 되었다.”고 호언할 정도가 되었다.


신흥 국가 발해가 이렇듯 급속히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의 영도력과 우월한 생산 기술과 문화를 지닌 상당수의 고구려 유민의 유입 및 그들에 의한 개척이 주요한 요인이었다.

이후 당과의 껄끄러운 관계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으면서 고구려의 뒤를 이어 동북아시아의 강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



발해의 역사가 한국사에서 가지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바로 고조선―고구려―신라·발해로 이어지는 한국사의 계보를 잇는다는 점이다. 즉 발해는 예맥계 주민이 만주 지역에 건설하였던 마지막 국가였다.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며 ‘해동성국’이라는 호칭까지 얻었던 발해는 현재의 중국 3성(길림성, 요령성, 흑룡강성) 지역, 러시아 연해주, 한반도 북부에 걸치는 광활한 영토를 가지고 있던 대국이었다.

 


 과거 발해 영토의 대부분은

현재 남의 땅이 되어 버렸고, 접근하기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일반인들의 관심에서 상대적으로 멀어졌고, 아주 먼 과거의 역사로 잊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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