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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조선

조선시대의 문화

by 산골지기 2024.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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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창제

우리 나라는 일찍부터 한자를 써 왔습니다.

한자의 사용으로 인하여 우리말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지배층과 피지배층 사이에 직접적이고 공식적인 의사 소통의 필요성이 커졌고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문자가 요구되었습니다.

조선의 4대왕인 세종은 집현전 학자들을 중심으로 정음청을 설치하였고요 여기에서 음운을 연구하여 한글을 창제하였습니다.

한글은 중국의 문자인 한문에 비해서 배우기 쉽고 조직적이었습니다.

한글의 창제
1443년에 제정
1446년에 반포

또 세종대왕 시기에 만들어진 한글은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글자 제작의 원리가 매우 과학적이었습니다.

세종 대왕은 한글을 널리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용비어천가를 지었고요 훈민정음을 1443년에 제정하여 1446년에 반포하였습니다.

용비어천가는 조선왕조의 창업을 칭송하고 왕조의 번영을 기원하는 악장이었습니다.

훈민정음을 창제한 후 불교의 경전인 불경, 농업서적인 농서, 윤리서, 병서 등을 한글로 번역하거나 편찬하였는데요 한글의 보급은 유교주의 교육과 지식 보급에 크게 기여하였고 국문학의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

한글이 창제된 이후 서리들로 하여금 훈민정음을 배워 행정 실무에 이용하게 하였고요 관리들의 채용에 훈민정음의 시험을 치르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한글이 창제된 이후 한문을 알지 못하는 일반 백성들도 문자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열렸고요 민족 문화의 기반이 더 넓고 확고해졌습니다.


역사서의 편찬

조선은 건국된 이후 왕조의 정통성에 대한 명분을 내세우고 성리학적 통치 규범을 정착시키기 위하여 역사서의 편찬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됩니다.

역사서의 편찬은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데요 건국 초기에 편찬된 역사서로는 정도전의 고려국사를 비롯하여 권근의 동국사략 등이 있습니다.

정도전의 고려국사는 태조시기에 편찬이 되었고요 권근의 동국사략은 조선태종때에 편찬이 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왕이 죽은 후에는 한 왕대의 역사를 후세에 남기기 위한 실록을 편찬하였는데요 국왕이 죽은 후에는 바로 춘추관을 중심으로 실록청을 설치하고 관련 자료를 종합하여 실록을 편찬하였습니다.

조선시대의 실록은 태조 실록 이후 조선 말기까지 계속 편찬되었는데요 고종과 순중시기의 실록은 없습니다.


고려 왕조의 역사 정리

고려 왕조의 역사를 자주적인 입장에서 재정리하고자 하여 기전체의 역사서인 고려사가 편찬이 되었고요 이후 편년체의 역사서인 고려사절요가 편찬되었습니다.

편년체의 역사서인 고려사절요는 고려사를 함축적으로 요약한 것인데요 고려사의 핵심부분들을 정선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성종 때에는 고조선부터 고려 말까지의 통사인 동국통감이 간행되었습니다.

동국통감의 간행은 훈구와 사림의 협력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동국통감
고조선부터 고려 말까지의 통사
훈구와 사림의 협력하에서 간행
성종 때에 간행

 

조선중기와 후기의 역사서 편찬

16세기에 이르러 사림의 정치 의식과 문화 의식을 반영하는 새로운 사서가 편찬되었는데요

16세기에는 중국을 숭상하는 존화 사상을 바탕으로 우리 나라 역사를 파악하였습니다.

중화사상이 발달을 하는 가운데 기자가 세운 기자 조선이 주목되었고요 유교 문화와 대립되는 고유 문화는 이단시되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조선후기에는 박상의 동국사략, 이이의 기자실기 등이 편찬되었습니다.


지리서와 윤리서

중앙 집권과 국방의 강화를 위하여 국토의 자연 환경과 인문 지리에 관한 정보를 정리하였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각종의 지도와 지리서가 제작되었는데요 15세기 초에는 세계 지도인 역대제왕혼일강리도와 전국 지도로서 팔도도가 만들어졌습니다.

지도의 제작
세계 지도인 역대제왕혼일강리도
전국 지도인 팔도도

 

전국지도인 팔도도는 몇 차례에 걸쳐 제작되었는데요 양성지의 팔도도는 과학 기구를 이용하여 정밀하게 제작되었습니다.

양성지는 팔도도에서 압록강 이북까지도 상세히 기록하였습니다.

16세기 중엽에도 많은 지도가 만들어졌는데요 당시에 만들어진 조선방역지도는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세종와 성종 때의 지리지

세종 때에는 지리지의 편찬도 추진되어 팔도지리지가 완성되었는데요 8도 지리지에서는 전국 8도의 지리, 역사, 정치, 사회, 경제, 산업, 군사, 교통 등의 내용을 실었습니다.

성종 때에는 인문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하였는데요 여기에는 전국에 있는 군현의 연혁, 지세, 인물, 풍속, 성씨, 고적, 산물, 교통 등을 수록하였습니다.

동국여지승람의 편찬 이후 중종시기에는 이를 증보한 신증동국여지승람이 편찬되었습니다.

동국여지승람
지세, 인물, 풍속, 성씨, 고적, 산물, 교통 등을 수록
인문지리서

조선시대에는 역사서 지리서와 함께 유교적인 질서를 확립하기 위하여 윤리와 의례에 관한 책들도 편찬되었는데요 이중에서 대표적인 것으로는 삼강행실도, 효행록 등이 있습니다.

삼강행실도는 우리나라와 중국의 충신, 효자, 열녀들을 소개하였습니다.

또 국가의 각종 행사에 필요한 의례를 제정, 정비하여 국조오례의 등을 편찬하였습니다.


경국대전의 편찬

유교 정치 이념을 기반으로 하는 조선 왕조는 통치 규범을 성문화하기 위해 법제의 정비 작업을 추진하였는데요 이러한 가운데 만들어진 법전이 경국대전입니다..

태조 시기에 정도전은 조선경국전, 경제문감 등을 편찬하였고, 뒤에 조준은 조례를 모아 경제육전을 만들었습니다.

세조대에 편찬하기 시작하여 성종대에 이르러 완성된 경국대전은 이전, 호전, 예전, 병전, 형전, 공전의 6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경국대전의 구성
이전, 호전
예전, 병전
형전, 공전

경국대전은 조선 왕조의 기본 법전으로 그 후 필요한 부분이 보완되어 조선 말기까지 유지되었습니다.

조선시대의 과학 기술

조선은 중기에 이르러 과학 기술도 발달하였습니다.

과학기술은 부국 강병과 민생의 안정을 위한 것이었는데요 과학 기술은 조선 왕조의 국가적 지원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유학자들도 기술학을 중시하여 전통적 기술 문화를 계승하고, 서역 및 중국의 과학 기술을 수용하였습니다.

국가적인 편찬 사업이 활발해지면서 활자와 인쇄 기술 문화가 발달하였는데요 고려 시대의 금속 활자 인쇄술은 조선시대에 와서 더욱 발전되어 계미자, 갑인자 등의 활자가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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