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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해주 국민의회의 통합
3.1운동이 일어난 이후인 1919년 4월 11일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이 되게 됩니다.
이러한 가운데 대한국민의회는 상해 임시정부와
통합을 논의하기 위해 상설의회를 개최하게 됩니다.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해주 국민의회의 통합 | |
대한국민의회 측 대표 | 원세훈 |
상해 임시정부 측 대표 | 안창호 |
러시아, 한성, 상해에서 수립된 임시정부를
하나로 통합하자는 통합 운동은 대한국민의회 측에서는
원세훈이 주도를 하였고요
상해 임시정부 측에서는 안창호가 주도를 하였습니다.
임시정부의 통합논의는 국내에서 수립된 한성정부의 법통을 인정하는 가운데
상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통합을 한다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게 됩니다.
임시정부의 통합논의는 1919년 9월 11일에 완료가 되는데요
9월11일 세 곳의 임시정부가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 정부로 통합이 되게 됩니다.
1919년 9월 11일 |
세 곳의 임시정부가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 정부로 통합 |
통합임시정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임시 대통령은
이승만이 맡았고요 국무총리는 연해주 국민회의 측의 이동휘가 선출되었습니다.
통합임시정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 |
국내에서 수립된 한성정부의 법통을 인정하는 가운데 상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통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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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대통령 | 이승만 |
국무총리 | 연해주 국민회의 측의 이동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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