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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

by 산골지기 2018.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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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의 대표적인 업적은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했다는 것이고요 신라의 왕권다툼에도 관여를 하여 김우징을 신무왕으로 즉위시키는데 많은 공헌을 하게 됩니다. 지금 완도에는 장보고를 기리는 장보고 기념관이 있습니다

 

장보고는 한국 남북국 시대 신라의 무장이자 해상 호족이다. 그의 출생과 계통은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에는 본명을 궁복(弓福) 또는 궁파(弓巴)라고만 적고 있다.

 

 일찍부터 친구 정연(鄭年, 정년)과 함께 당의 서주(徐州)로 건너간 그는 그곳에서 승마와 창술에 특출난 재주를 보이며 군인으로서 출사해 무령군중소장(武寧軍中小將)의 직책을 받게 되었다.

 흥덕왕 3년(828년) 초에 신라로 돌아온 그는 왕에게 신라인들이 해적들에게 납치되어 노예로 팔리는 참상을 전하며, 완도에 군사 거점을 세워줄 것을 청했다.

 마침내 승인을 얻어 1만여 명의 군대를 확보한 그는 완도에 청해진(淸海鎭)을 세우고 대사(大使)가 되었다. 그의 활약으로 827년~835년 이후로 해상에서 신라 노예를 매매하는 일이 사라졌다고 《삼국사기》는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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