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제국의 시초는 현 러시아 지역에 존재했던 군소국가 가운데 하나였던 모스크바 대공국이다.
● 모스크바 대공국
----- 14세기에서 15세기에 걸쳐
타타르족이나 주변의 루스 국가들과 싸우면서 세력을 확대
----- 이반 3세 때 처음으로 스스로를 차르라고 자처
차르는 러시아어로, 루스 사회에서는 원래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에 한해서만 사용되었던 칭호다.
1453년에 비잔티움 제국이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한 후, 모스크바 대공 이반 3세는 비잔티움 제국의 마지막 황녀를 아내로 맞이하여, 차르라는 칭호를 사용할 수 있는 명분을 얻었다.
또한 모스크바에 있던 동방정교회의 주교좌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면서, 모스크바는 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의 뒤를 잇는 제3의 로마라는 인식이 생겨나는 등 모스크바 대공국 내에서는 제국을 자부하는 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547년에는 이반 3세의 손자 이반 4세가 자신을 전 러시아의 차르라고 하면서, 모스크바 대공국의 군주는 곧 전 러시아의 군주이며 로마 황제의 계승자임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 칭호는 단지 국내용에만 머물렀으며,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는 오랫동안 러시아의 군주를 황제도 왕도 아닌, 단순히 모스크바 대공으로 부르고 있었다.
이반 4세가 죽은 후, 국내가 혼란스러워지면서 내전 상태에 빠져들었다(동란 시대). 1606년 이후에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코사크, 스웨덴 등이 러시아를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대동란은 정점에 다다랐다.
1610년에는 당시 강대국이었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 의해 수도 모스크바가 점령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러시아인들은 로마노프 왕조 등을 중심으로 국민군을 결성하여 외세에 대해 맹렬히 저항했다. 1612년, 10만에 이른 국민군 병사들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군을 물리치고 모스크바를 해방시키는 데 성공했다.
오랫동안 혼란 상태였던 러시아는 그동안 유럽으로의 진출이 정체되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로부터 국제적인 지위는 높지 않았다.
1613년, 류리크 왕조의 외척인 미하일 로마노프가 원로원에 의해 차르로 즉위했으나, 아직 서구는 로마노프 가를 러시아의 황제로 인정하지 않았다.
17세기 중반에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을 침공, 대홍수 시대(Potop)로 불리는 내전에 개입하여 동구권에서의 국제적 지위를 높였지만, 그럼에도 대외적으로는 큰 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17세기 말, 차르로 즉위한 표트르 대제가 서구화 정책을 실시하면서, 러시아는 간신히 유럽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 표트르 대제가 로마 황제의 정식 칭호인 임페라토르를 러시아 황제의 칭호로 채용하고, 정식으로 러시아 제국이라는 국호를 제정한 것도 이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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