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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고대

박혁거세

by 산골지기 2016.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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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거세는 박씨의 시조로 경주 부근에 신라를 건국했다. 고조선의 멸망과 잇따른 북방의 정치적 격변 등에 따른 유이민의 파동으로 남부지역에는 많은 소국이 형성되었는데, 경주평야를 중심으로 6족의 후예들이 양산촌, 고허촌 등의 6개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허촌장 소벌공이 양산 기슭 나정이라는 우물 옆 숲속에서 큰 알을 발견했는데, 알 속에서 어린아이가 나와 이 아이를 길렀다. 그의 나이 13세가 되던 해 6촌의 촌장들은 그의 출생을 신기하게 여겨 왕으로 삼았다고 한다.


나라이름은 서라벌이라 하고 알영을 왕비로 맞았다. 즉위 후 왕비와 함께 6부를 돌며 농사와 양잠을 장려했으며, 서울을 금성으로 정하고 성을 쌓았다.

박 모양의 알에서 나왔다고 하여 박이라는 성을 붙였으며, 혁거세는 이름이 아닌 존호이며 '밝은 세상'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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