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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운영이 만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를 비롯 `주께 드리네' 등 다수곡이 카톨릭성가집에 실려있을 정도다.
성가를 통해 신-구교일치운동을 펴기도 했던 그는 원래 카톨릭신자였는데 신부가 되기위해 원산(元山) 덕원신학교에 입학할 생각을 했었고 성악가인 부인 柳慶孫여사와 명동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렷다. 이후 46년 개신교로 개종했다.
개종후 서울역앞 성남교회서
30년이상 교회성가대를 지휘했으며
79년이후 송파구 오금동 호산나교회에서
매달 `월례신작성가발표회'를 갖기도 했다.
52년부터 강단에 서기 시작,
이대, 연세대, 전남대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현대음악협회장, 한국민속음악박물관장,
한국동요동인회장, 한국聖音樂협회장등을 역임했다.
화성학, 대위법, 작곡법, 음악형식론 등 다수의 저서가 있고 서울시 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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